나누고 더하는 사랑

나누고 더하는 사랑

[ 현장칼럼 ]

강호 목사
2023년 10월 13일(금) 18:23
지난 9월 9일은 장기기증의 날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서울 보라매공원에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90여 명이 모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이렇게 많은 유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기는 처음이었다. 더욱이 장기기증의 날 행사에 처음 참석하는 가족들도 있어서 어떻게 하면 더 따뜻하고 반갑게 그들을 맞을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날이었다. 다행히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 9월 초까지 이어진 늦더위 탓에 조금 덥기는 했지만,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맑은 하늘 아래서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보라매공원을 찾은 유가족들은 자연스럽게 '나누고 더하는 사랑' 앞에 모였다. '나누고 더하는 사랑'은 지난 4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보라매공원 내에 조성된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공간에 건립된 조형물의 이름이다. 동그란 모양의 구를 삼층으로 쌓아 올린 조형물은 기증인의 사랑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제일 하단의 구는 짙은 붉은 색, 중간의 구는 분홍색, 제일 상단의 구는 하얀색을 띠고 있다. 붉은색은 숭고한 나눔을 실천한 기증인, 분홍색은 장기기증을 결정한 가족, 하얀색은 생명을 선물 받은 이식인을 의미하는데, 이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이어져 있음을 뜻한다.

조형물 앞에 서자 마음이 저절로 뭉클해졌다. 지난 4월부터 여러 차례 조형물을 봐왔지만,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장기기증을 실천한 아들이 남긴 사랑을 공원을 이용하는 여러 사람과 함께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뜻깊었다. 다른 도너패밀리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기증인의 숭고한 발자취가 유가족들의 기억 속에서만 회자되지 않고 조형물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는 것, 그를 통해 기증인의 사랑이 오래오래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 그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다.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립지만, 남편의 장기기증을 통해 많은 환자가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은 깊은 자긍심을 느끼게 합니다."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 공간 근처에서 진행된 장기기증의 날 기념행사에서 이날 처음으로 참석한 도너패밀리 한 분이 소감을 전했다. 그녀는 내가 아들과 사별한 2000년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분이었다. 한창 아이들이 자랄 시기에 혼자 가정을 책임지는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온 그녀의 얼굴에서는 고단함보다 긍지가 느껴졌다. 남편의 생명나눔을 통해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이가 7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그녀의 삶을 보람과 긍지로 채웠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조형물 앞에 선 유가족들의 모습은 모두가 조금씩 닮아있었다. 깊은 그리움 속에서도 빛나는 자긍심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예기치 않은 이별은 깊은 상흔을 남긴다. 그러나 큰 슬픔 가운데에서도 장기기증이라는 가치 있는 결정을 한 가족들은 언젠가 깊은 슬픔 속에서도 자긍심을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냥 스쳐 지나갈지도 모르는 조형물이 도너패밀리의 눈에는 대단한 예술 작품보다 더 빛나고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도 자긍심 때문일 것이다. 기증인이 남긴 '생명'이라는 유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있기에 그 가치를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 그 어떤 명소보다 멋지고 훌륭한 장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도너패밀리가 '나누고 더하는 사랑' 앞에서 느끼는 감동과 감격을 모든 시민이 함께 누리기를 희망하며, 생명을 나누는 따뜻한 나눔에 참여하는 이들이 나날이 더해지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강호 목사 /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 도너패밀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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